●”공연은 계속해야 해” 펜데믹 시대에도 클래스

 #안덕트_연극 #나의_스타일로_연기해도_괜찮겠습니까?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연극 수업을 하라는 것인지 국어지도서를 읽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5학년 2학기엔 10시간 분량의 연극단원이 있다. 연극을 온라인 수업으로 돌리지 못해 귀중한 등교 수업 주간에 넣었지만 코로나의 벽에 부닥쳤다. 등장인물 간 접촉 최소화, 마스크를 쓴 채 대사 말하기, 거리 확보 음, 이를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수 없이 컨택연극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러분 올해 연극 수업은 대사 위주입니다’

말도 안 돼요! 아이들은 콘택트라는 조건을 듣고는 크게 실망했다. 몸이 닿지 않는 범위에서 동작을 이것저것 집어넣으면 재미있는 장면도 4컷이나 들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우리 반은 권정생 작가의 동화 강아지 똥을 각색해 대본을 만들었다. 강아지의 똥은 힘도 약하고 깨끗하지 않다. 이야기 내내 울음, 참새, 병아리, 그리고 흙덩어리에 무시된다. 이런 이야기는 주인공 캐스팅이 어렵다. 비장의 막대 사탕을 상품으로 내걸었지만, 신청율은 제로.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목소리가 중심인 연극에서 주인공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차라리 학예회나 동아리 발표회 같은 큰 무대에 올리는 연극이었다면 이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늘 있고, 외부인 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기회에는 지원자가 넘친다. 그런데 학급 공연은 좀 애매하다. 눈에 띄는 외적 보상이 없다. 이럴 때는 반 분위기가 너무 중요해. 안타깝게도 우리 반 분위기는 이번 연극은 연극 같지도 않다. 누가 시끄럽게 강아지 똥을 누느냐는 말이 흘러나왔다.

결국 엑스트라 역은 일찌감치 마무리되고 주인공 격인 강아지 똥과 민들레만 남았다. 나는 자포자기의 기분으로 천이백원을 주고 산 강아지 똥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 배우의 목소리로 등장하는 강아지 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세대답게 영상에 빠져들면, 결국, J군 한 사람이 손을 든 J의 요청 사항은 단 하나. 제 스타일로 연기해도 될까요?

나는 순간 망설였다. 주인공을 맡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J에게 연극을 맡겼을 때의 아수라장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J는 좋게 말하면 에너지 넘치는 아이다. 자칫 잘못하면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J가 연기한 강아지 똥은 원작과 전혀 달랐다.순박하고 연약한 강아지 똥은 세상의 독한 맛, 쓴맛을 간파한 강아지 똥으로 탈바꿈한 자신을 “애송이””강아지 똥”이 아니라” 어엿한 강아지 똥”라고 부르라는 J의 활약은 대단했다. 대사가 다소 과격해졌지만 외롭고 나약한 존재가 겪는 슬픔과 외로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개똥지기는 민들레와 참새와 흙덩어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 차례에 걸친 시나리오 리딩은 실제 리허설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시로가 똥을 누려면 김이 나고 아기 고추를 죽게 한 흙덩어리는 시커멓게 타버린 것 같았다. 연극에서 아이들은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상상력의 힘인가? 나는 기분이 묘했다. 교실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단순하다. 아이들은 반투명한 칸막이로 둘러싸인 책상에서 대본만 들여다본다. 더욱이 책상들이 시험대형으로 널려 있어 응집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목소리로 그리는 연극의 한 장면이 역력했다.

보름간 컨택연극 단원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을 때 우리 반은 예전에 알던 그 반이 아니었다. 먼 곳을 다녀온 듯한 당당한 표정이 얼굴에 남아 있다. 온라인이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수업. 그동안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J와 친구들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대견스럽지만 J군의 머리를 한번도 쓰다듬어주지 않는 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야.

아이들이 물었다. 내년에는 마스크를 벗고 연극을 할 수 있을까요? 글쎄, 나는 아이들이 끝까지 대답하지 못한 채 웃기만 했다.

이준수 선생님(청라초등학교)